[경향신문] 일간신문 - 베르나르 브네 특강 인터뷰 2011.03.11

지난 8일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개막식에서 ‘1분30초 만에 끝낸’ 작품을 설명하고 있는 베르나르 브네.


세계적인 개념미술가 베르나르 브네(70)는 ‘과정’보다 ‘아이디어’에 몰입하는 작가다. 수학을 그림에 도입한 브네가 서울에 왔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만난 그에게 “금색 바탕에 검은색 숫자가 나열된 가로 세로 2m의 작품을 그리는 데 얼마나 걸렸느냐”고 묻자 “1분30초!”라고 했다. 성격 급한 자신은 정교한 작업을 할 수 없어 작품 구상만 했고, 조수가 4일 동안 그렸다는 것이다. 

서울시립미술관 주최 ‘베르나르 브네-페인팅 1961~2011’전을 위해 지난 4일 한국에 온 그는 사흘간 서울시립미술관 벽에 채색 작업을 했고, 5일에는 서울 청담동 에이트 인스티튜트에서 특강을 가졌다. 브네는 수학방정식을 캔버스에 그리고, 검은 타르를 화폭 전체에 흘려 굳혀낸 작업으로 유명하다. 국내에도 지난달 23일 입주가 시작된 서울 ‘한남 더 힐’ 아파트의 조각품, 동국제강 사옥 앞의 둥근 철 조각품으로 잘 알려진 작가다.

지난 8일 자신의 첫 회고전 개막식에 참석한 브네는 “수학을 좋아하지 않지만 숫자는 구상·추상이 아닌 중성적 의미여서 수학공식의 형태를 화폭에 담았다”며 “지난 50년 동안 제작한 회화 조각, 영화, 사진, 퍼포먼스 등 모든 작업세계를 상징하는 40여점의 작품을 선보인다”고 설명했다. 브네는 작품 내용의 집중도를 위해 최대한 단순하고 중성적인 작업을 추구한다. 작품을 매력적으로 보이기 위한 장식적 시도를 단호히 거부한다.

‘3중 공식’

“고백할게요. 저는 제가 이해못하는 종목에 매력을 느낍니다. 수학도 제가 이해못하는 장르여서 고도의 추상화로 담아낼 수 있었지요. 1966년 그린 포물선 그림은 ‘수학을 캔버스에 끌어들이게 한’ 중요한 작품입니다.”

브네는 일반인이 자신의 그림을 어렵게 생각하는 건 당연하다고 했다. 관람객이 자신의 그림을 보자마자 좋아하는 건 싫다고도 했다. 그의 목표는 단순하다. ‘이런 표현도 가능하다’는 미술의 한계를 보여주고 싶다는 것이다. 브네는 “샤갈이나 피카소처럼 낯설고 새로운 작품을 위한 미의 모험을 추구한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는 18세에 그린 초창기 작품, 예술에 반(反)하는 1960년대 초의 타르회화, 1966년 시작한 수학 기호·도표·공식 등을 미술언어로 차용한 개념미술, 2000년대 이후의 포화그림과 변형캔버스 작품 등 브네의 예술세계를 시기별로 보여주는 구성이다. 작품마다 함수 같은 수학 기호나 공식 등으로 캔버스 전체가 가득차 있어, 그림 속 기호가 아름답게 다가오진 않는다.

프랑스 출신인 브네는 니스 시립미술학교에서 수학하고 니스 시립오페라단 무대 디자이너로 활동하다 1966년 뉴욕 여행 중 뉴욕 정착을 결심했다. 당시 미니멀리즘 작가인 도널드 저드, 댄 플래빈, 솔 르윗 등의 작품을 보고 큰 충격을 받은 후 개념작업을 시작하기 위함이다.

“제 작품을 보고 수학도표 같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나는 ‘미켈란젤로의 누드화는 예술인가 해부학인가’ ‘사각형과 삼각형으로 구성된 말레비치의 그림은 예술인가 기하학인가’ 묻고 싶습니다.”

브네는 미술의 목적을 ‘아름다움이 아닌 지식에 대한 것’으로 정의한다. 현재 브네의 작품은 프랑스 퐁피두센터, 미국 뉴욕현대미술관(MoMA) 등 세계 유수의 미술관 60여곳에 소장됐다. 무료관람. 월요일 휴무. (02)2124-8800 www.seoulmoa.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