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트 인스티튜트] 임근준의 ‘오늘의 미술이 말하는 법’
: 열쇳말로 살펴보는 현대미술문법 14강
“현대미술의 기초 문법을 배우면, 막혔던 눈과 귀가 열린다.”
01. 양차대전 사이의 추상
- 자연의 추상에서 탈자연의 추상으로
_ 4월 3일
02. 전후의 추상
- 부재의 추상에서 과정의 추상으로
_ 4월 10일
03. 광기
- 비이성적 에너지를 창작의 원천으로 삼기
_ 4월 17일
04. 말장난
- 언어로 조형을 유희하기
_ 4월 24일
05. 색상
- 감성적 상징에서 비주관적 탐구의 대상으로
_ 5월 1일
06. 사진
- 사진술을 활용하는 다양한 현대적 방법
_ 5월 8일
07. 수집과 조사연구
- 유사 과학적 방법으로 작품을 귀결 짓기
_ 5월 15일
08. 비기념비
- 기념비를 반대함으로써 또 다른 기념비를 세우기
_ 5월 22일
09. 제도 비평과 장소 특정성
- 미술 전시의 조건을 작품의 일부로 삼기
_ 5월 29일
10. 전유 혹은 도둑질
- 재능은 빌리고, 천재는 훔친다
_ 6월 5일
11. 미술가의 몸
- 에고의 성전을 부리는 예술적 방법
_ 6월 12일
12. 비미술적 재료
- 자전거 바퀴에서 인공위성까지
_ 6월 19일
13. (상징 형식으로서의) 인터페이스
- 제품의 형식으로 사용자 마인드에 소구하기
_ 6월 26일
14. 피처링, 포스트-프로덕션, 매시업
- 예상한 것 이상의 결과를 도출하는 방법
_ 7월 3일
_ 강의 소개
‘현대미술이 전시된 갤러리를 찾으면 알게 모르게 주눅이 들어요-’라고 말씀하는 분들이 적잖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현대미술을 이해하기가 그리 쉽지만은 않기 때문이죠. 하지만, 불가해한 듯 뵈는 현대미술품 앞에서 세련된 척하며 폼을 잡는 사람들을 보고 “나만 이해를 못하나…, 내 눈에만 안 뵈는 뭔가가 있나…”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랍니다. 문제적인 작품은 미술계 관계자들도 전연 이해를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큐레이터조차 자신이 기획한 전시의 작품을 하나하나 다 꾀고 있지는 못합니다. 그렇다고 작가가 직접 나서서 작품을 해설하면 곤란합니다. 그러면, 작품이 말할 기회를 작가가 빼앗는 꼴이 되고 말거든요. 그러니, 말이 없는 작품을 가운데 놓고, 작가는 작가대로 힘들고, 관객은 관객대로 힘이 드는 형국입니다. (중간에 나서서 작품 해설을 도맡은 도슨트의 설명은 영 신뢰가 가지 않고요.)
현대미술이란 상상의 공동체는 세상을 보는 방법을 놓고 다투는 격전장에 다름 아닙니다. 고로 작가들이 골머리를 썩어가며 찾아낸 새로운 ‘보는 방법’이 단박에 이해될 턱이 없죠. 현대미술을 쉽게 이해하는 지름길이 있을까요? 아쉽게도, 왕도는 없습니다. 시대의 집단 지성이 흘러가는 조류를 쫓아 열심히 공부하는 수밖에요. 어떤 분은 묻더군요, “서양미술사를 소개하는 교양·입문서들을 읽어보면, 이해하기에 그리 어렵지 않은데, 왜 현대미술엔 그런 책이 드문가요?” 듣고 보니 그렇더군요. 아마도, 그런 교양서를 쓰기 어렵기 때문일 겁니다.
르네상스 이후의 원근법 회화를 분석하고 기술하는 방법은 잘 정리돼있습니다. 천재 미술사학자 에르빈 파노프스키(Erwin Panofsky)가 제시한 도상해석학(iconography)이 대표적입니다. 추상미술운동 이전의 회화사는 그가 갈무리한 방법론으로 관통이 가능합니다. 도상해석학에 기반을 둔 채 진척된 학술연구의 성과도 상당하죠. 대중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문장으로 꾸며진 교양·입문서는 그런 토대 위에서나 가능합니다.
그런데, 현대미술은 구상회화조차 도상해석학으로는 해석이 되지 않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그렇다고 현대미술사를 연구하는 새로운 방법론이 확립된 것도 아닙니다. (논문을 쓰는 사람들마다 방법론이 제각각입니다.) 게다가, 1945년 이후의 현대미술에 관해선, 아직도 주요 작가들이 생존해 있기 때문에, 학위 논문이 잘 나오지 않습니다. (살아있는 사람은 자신에 관한 논문에 어떤 식으로든 간섭을 하기 마련이지 않겠어요?) 그러니 독보적 권위를 얻은 현대미술사 저작이 아직 없습니다. 정전(canon)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게다가 1960년대 후반 이후 지성계의 흐름은 정전을 쓰는 일을 터부시했기 때문에,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토대가 아직 빈약하니, 교양·입문서도 실하기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좋을까요? 묘수가 없을까 고민하다 보니, 현대미술가들이 구사하는 시각언어를 쉽게 해설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르네상스의 화가들이 원근법을 활용해 공간을 구성하고 그에 이러저러한 사물과 인물을 상징적으로 배치해 관객에게 이야기를 걸었다면, 오늘의 작가들은 저마다의 방법을 개발해 관객에게 이야기를 겁니다. 방법론이 제각각이다보니, 현대미술의 난해함은 가중되고, 글쓰기도 더욱 어려워집니다. 현대미술 작품 하나를 놓고도 해석이 분분하기 일쑤인 터라, 대개의 평자들은 문제적 작품을 구체적 언어로 해설하기 꺼립니다. (훗날 자신의 해석이 틀렸거나 편협했음이 드러나면 난처하기 때문이죠.) 상황이 이러하니, 역시 최선의 방도는 작가들이 고안해낸 제각각의 조형언어를 종류별로 갈무리하고 그 대표작을 그에 맞춰 쉬운 말로 해석해보는 일입니다. 그러면, 작품을 보는 눈도 생기도, 이해도도 높아지지 않겠습니까? (기본 문법을 터득하면, 독해가 되기 시작하듯이.) 그래서, 이 연강의 제목은 “오늘의 미술이 말하는 법”입니다.
자, 앞으로 ‘오늘의 미술이 말하는 법’ 가운데 무엇을 어떻게 강설하면 좋을지 한번 정리해봤습니다. 강의가 진행되면서 계획이 변경될 수도 있겠지만, 현재 예상하는 바는 이렇습니다:
제1강과 제2강에선 현대미술의 기본인 추상미술을 공부합니다. 추상미술은 크게 두 갈래로 나눠 볼 수 있습니다. 우선, 중고등학교 미술 교과서에 나오듯, 구상에서 출발해 반추상을 거쳐 추상에 도달한 것이 바로 한 가지입니다. 그런데 그것도 대상을 추상화하다보니 점차 과정을 추상화하는 단계로 전환됩니다. 그러다가 아예 관조의 대상으로서의 추상이 아니라, 물질 그 자체, 그러니까 그림과 조각이 되는 물적 토대만 남기고 나머지 환영의 요소는 모두 제거해 버린 새로운 추상이 등장합니다. 그것이 바로 미국의 미니멀리즘 미술입니다. [...] 저는 추상을 ‘얼음지옥’이라고 표현하곤 합니다. 통과하기 무척 어렵지만, 일단 통과하면 나머지 현대미술을 이해하기가 쉬워집니다. (‘얼음지옥’ 너머엔 후끈한 ‘정글’의 동시대가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반대로, 추상을 이해하지 못하면, 현대미술은 요해불가(了解不可)의 것이 되고 말죠.
시간이 허락한다면 말미에 오늘의 추상도 살펴볼 생각입니다. 한때는 미니멀리즘 이후 더 이상 추상미술이 갈 곳은 없을 것 같았고, 또 그에 반발하며 신구상회화와 설치미술이 새로운 주류로 떠올랐기 때문에, 여전히 추상 미술이 유효한 의제(agenda)라는 사실을 잘 모르는 분들이 많더군요. 심지어 미술학교에서 회화를 전공하는 학생들도 잘 알지 못합니다. 요즘의 새로운 추상화가들은 가상적 회화 공간을 설정하고, 그 속에서 자가생성하는 추상의 질서를 탐구하는 것이 특징이죠.
제3강에선 광기를 다루는 방법을 보겠습니다. 광기는 이성을 넘어서는 힘의 원천입니다. 정신병자의 그림에서 한수 배운 작가가 있는가 하면, 스스로를 극한으로 몰아붙여 반쯤 미쳐버린 작가도 있고, 미치지는 않았지만 미친 짓에 가까운 행위를 시도함으로써 남다른 넌센스와 아이러니를 구현한 작가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광인의 이미지를 지닌 예술가의 전형은 언제 어떻게 등장했을까요?
제4강에선 말장난의 방법을 공부하겠습니다. 많은 작가들이 언어유희로 비언어적 조형의 차원을 가지고 놀기를 꿈꿨습니다. 또한 조형과 언어의 일상적 관계를 비틀어 새로운 돌파구를 찾기도 했습니다. 단순한 제목의 말장난에서부터, 언어로 창작 행위를 규제하는 다양한 방법, 그리고 ‘언어에 연루된 오브제를 언어에 종속시키지 않은 채 다른 차원의 오브제로 전환시킴으로써 궁극의 조형적 쾌락을 추구하는 법’ 등에 이르는 다채로운 말장난의 메소드를 소개합니다.
제5강에선 색상을 다루는 법을 배워보겠습니다. 중·고교 미술 교과서에서 ‘형태는 논리적인 것이고, 색채는 감성적인 것’이라고 가르칩니다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또 얼치기 색채심리학 때문에, ‘색채는 비물질적인 것으로서 우리의 무의식에 연루된다’는 식으로 이해하는 분들도 적지 않습니다. 그것도 진실은 아닙니다. 모든 색채는 물질의 형태로 존재합니다. 심지어 인공물의 색채는 레디메이드입니다. 공장에서 미리 만들어 놓은 색상의 체계는 유행과 생산 조건에 따라 지속적으로 변화합니다. 따라서 현대미술가들은 감성을 표출하는 도구로 색채를 이용하는 것 외의 다양한 방법으로 색상의 실존을 다뤄왔습니다. 행위를 기록하는 코드로 이용한 사람도 있고, 색상 그 자체를 탐구하는 도구로 색상을 이용한 작가도 있습니다.
제6강은 사진을 활용하는 다양한 현대적 방법을 이야기할 차례입니다. 사진은 다른 전통적 매체와 달리 여러 매체를 통해 존재하는 특성이 있습니다. 보관을 할 때도 필름이 원본인지, 프린트가 원본인지, 스캔한 데이터가 원본인지 도통 알 길이 없죠. 그러한 특성 때문에 사진은 개념미술가들에 의해 각광 받았습니다. 매체에 귀속되지 않는 미술 작품을 만드는 데 아주 적절했거든요. 사진은 행위와 퍼포먼스 등의 기록으로도 중요한 역할을 했고, 포스트모던의 시대에 구상 회화가 새롭게 부활하는 과정에서도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제7강에선 수집과 조사연구의 방법을 공부합니다. 많은 현대미술가들은 수집과 조사연구에 기반을 둔 작업을 즐깁니다. 수집한 오브제를 박물관의 맥락으로 배치해 헛의미를 창출하는 작가들이 있는가하면, 유사-과학적 방법으로 탈인간적인 작업을 귀결 짓는 작가들도 있고, 심지어 부동산을 수집해 작품을 제작한 작가도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적잖은 작가들이 수집과 조사연구를 통해 얻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스킨의 구조를 만듭니다. 스킨과 데이터베이스를 연동시켜 새로운 의미를 창출하려는 것이죠. 만화와 애니메이션에만 오타쿠(オタク)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미술에도 오타쿠 같은 이들이 있어서, 데이터베이스에서 서사를 다중 호출하는 스킨을 만들고 그를 통해 의사소통을 꾀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떤 현대미술가는 ‘오타쿠에게 한수 배울 점이 있다’고 이야기하는데, 대체 무슨 뜻일까요?
제8강은 비기념비를 세우는 방법을 다룹니다. 기념비를 반대함으로써 또 다른 기념비인 비기념비를 세우는 일은, 전후 현대미술에서 중요한 의제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허술한 키치적 기념비로 비기념비를 세운 작가도 있고, 불가능한 기념비의 계획을 세워 비기념비적 미완의 작업을 완성한 작가도 있으며, 상상 속의 기념비를 실물로 제작하고, 그 과정에서 발생한 부산물을 작품으로 제시한 작가도 있습니다. 어떤 경우든, 기념비를 세우는 일을 죄악시한다는 점은 같습니다.
제9강에선 제도 비평의 방법과 장소특정성을 이야기합니다. 1980년대 말 이후 미술 제도와 장소의 조건을 작품의 일부로 삼아 미술을 둘러싼 권력을 비평하는 다양한 방법이 개발됐습니다. 큐레이터가 끊임없이 관리해야 작품이 완성되는 작품을 제시한 작가도 있고, 작품 제작비로 청소부 아저씨를 해외로 여행 보내고 대신 여행 사진을 제공받아 작품으로 제시한 작가도 있습니다. 왜 이런 작업을 하는 것인지, 하나하나 설명해보겠습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장소특정적 미술이 문제로 삼는 ‘장소’란, 실제의 장소를 이론적으로 재해석해낸 특정한 차원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제10강은 남의 것을 훔쳐다가 제 작업의 몸통을 꾸미는 방법을 논합니다. 오스카 와일드가 “재능은 빌리고, 천재는 훔친다”고 했던가요. 남의 사진을 다시 촬영해 제 작업이라고 우기는 작가에서, 기존의 디자인을 그대로 답습해 새로운 의미를 창출하는 디자이너에 이르는 다양한 사례를 통해 ‘전유(appropriation)’라고 하는 현대미술계에 만연한 방법의 다양한 전개를 해설하겠습니다. 요즘 미술가들은 전유 이후의 방법을 모색하느라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고 있죠.
제11강은 미술가가 제 몸을 어떻게 미술의 미디엄으로 삼는지, ‘미술가의 몸’이라고 하는 ‘에고의 성전’을 부리는 다종다양한 예술적 방법을 고찰하고 분석합니다. 출발점은 몸을 붓으로 삼은 추상표현주의의 대가 잭슨 폴락입니다. 폴락의 액션 페인팅에 대한 화답으로 등장한 여러 남녀 미술가의 성과를 냉정하게 평가해봅니다.
제12강에선 자전거 바퀴에서 인공위성에 이르는 비미술적 재료가 어떻게 미적으로 활용되며 포스트-미디엄의 상황(post-medium situation)을 연출해냈는지 살핍니다. 미술가들이 미적 미디엄의 한계를 벗어난 역사를 훑어보면, 오늘날 왜 뉴미디어 아트는 특권적 영역을 상실하고 말았는지, 왜 미적 미디엄의 재발명은 중차대한 의제인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포스트-미디엄의 상황을 이해하는 일은, 열네 차례의 강의가 제시하는 가장 중요한 과제입니다.
제13강은 제품의 형식으로 소비자 마인드의 관객에게 소구하는 법을 살펴봅니다. 기성 제품으로 제작된 작품에서, 진공청소기의 형태로 제작된 작품, 그리고 작품으로 제시된 승용차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례를 통해 현대미술에서 제품의 인터페이스가 일반적 상징 형식으로 기능하는 방식을 설명하겠습니다. 강의의 문을 여는 키워드는 기생-기능성(para-fuctionality)입니다.
마지막인 제14강에선 과정을 유희함으로써 예상 밖의 결과를 도출하는 현대적 방법을 공부합니다. 포스트-프로덕션(post-production) 과정의 미적 함의, 피처링(featuring)이나 매시업(mashup)의 방법이 지닌 의의 등을 살펴봅니다. 이 가운데 가장 흥미로운 현상은, 이러한 과정에서 작가들이 현실과 허구를 교묘하게 뒤섞어 기이한 현실을 직조해낸다는 점입니다. 왜 많은 작가들이 현실과 허구를 이어붙이는 데 매료되는지, 그것이 우리가 세상을 보는 방식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생각해봅시다.
자, 앞으로 전개될 열네 번의 연강, 꽤 재밌는 미술 공부가 되지 않겠습니까? ///
임근준 AKA 이정우 _ 미술·디자인 평론가, 홍익대 BK연구원, DT네트워크 발기인. 1995년부터 2000년까지 동성애자 인권운동가로 활동했고, 이후 아트선재센터 어시스턴트 큐레이터, 계간 공예와 문화 편집장, 한국미술연구소/시공아트 편집장, 그리고 월간 아트인컬처 편집장 등을 역임했다. <크레이지 아트, 메이드 인 코리아>(2006), <에스케이모마 하이라이트>(2009), <이것이 현대적 미술>(2009) 등이 대표 저작이고, 2011년 8월 <예술가처럼 자아를 확장하는 법>을 발간했다.
더 자세한 내용은 문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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