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민넷] 여성가족부 운영 포털 - 인터뷰 2010.10.28

2007년 국내 미술시장 최고가인 45억2천만원에 낙찰된 박수근의 <빨래터>. 그리고 올 6월 35억6천만원에 팔려 미술시장의 핫이슈가 되기도 했던 이중섭의 유화 <황소>. 이같은 경매 기록은 모두 박혜경(43) 경매사의 손끝에서 나왔다.

미술품 경매사 국내 1호

‘maping your art world’를 늘 가슴에 새기며

강의하는 박혜경 대표

‘미술품 경매사 국내 1호’라는 상징성 때문에 박 대표는 30대부터 늘 주목을 받았다. 진로그룹 홍보실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한 그는 우연한 기회에 화랑 아트 디렉터로 미술계와 인연을 맺었고 1998년 서울옥션 창립 멤버로 참여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미술 경매시장에 뛰어들었다.

1998년 9월28일은 그에게 잊을 수 없는 날이다. 첫 경매 데뷔일인 까닭이다. 소심한 A형인 그녀가 무대 울렁증을 극복하고 베테랑 승부사로 자리 잡기까지, 그녀에겐 일 중독자로 치열하게 보낸 10여년의 세월이 있었다. “대학 전공이 미술이 아닌 사학이란 핸디캡을 안고 출발했기 때문에 더욱 더 분발해서 뛸 수밖에 없었지요.

작가와 미술평론가, 고미술품 전문가를 귀찮을 정도로 쫓아다니며 전문지식을 쌓았고, 미술품 컬렉터를 일일이 찾아가 작품을 사게 된 경위부터 당시 구입가격까지 꼼꼼히 물어봤지요. 이렇게 얻은 생생한 자료가 쌓이다 보니 미술시장의 큰 흐름이 보이더라구요” 30대를 이렇듯 치열하게 보냈다.


물론 소더비나 크리스티처럼 세계적인 명성의 경매장을 틈나는 대로 답사하며 현장의 분위기를 익혔고, 미술경매 장면이 나오는 영화는 모조리 찾아보며 경매사의 어투, 손짓과 몸짓, 카리스마 있게 경매 분위기를 이끌어가는 연출력 등을 벤치마킹했다. “원래 내성적이고 숫기가 없었어요. 그래서 무대공포증을 없애기 위해 문 닫아 걸고 ‘나는 프로다 나는 프로다’라고 자기 암시를 걸며 거울 보면서 수없이 실전 연습을 했지요. 아나운서 같은 방송인에게서 그들만의 진행 노하우를 전수받기도 하구요”

서울옥션 1회 경매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180여 차례를 진두지휘한 베테랑이지만 아직도 경매장에 서면 긴장된다고 한다. 불쑥불쑥 솟아오르는 번호패를 끊임없이 확인하며 망설이는 응찰자들의 미묘한 심리를 읽어가면서 밀고 당기는 고도의 심리게임을 펼쳐야 하기 때문이다. 중간 중간 전광판에 표시되는 금액도 순발력 있게 확인해 가면서 최대한 공정하게 낙찰가를 올려야 하는데 이 같은 팽팽한 신경전이 보통은 2시간, 길어질 때는 4시간까지 이어진다.

미술시장 최전선에서 그가 항상 접하고 있는 컬렉터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내공이 쌓인 컬렉터들은 경제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만큼 시장을 읽어 내는 심미안을 가지고 있는 셈이지요. 시대에 따라 인기작가가 변하고 동일 작가도 시기별, 작품별 시세 차이가 있다는 걸 예리하게 간파하고 있어요.” 때문에 13년간 경매사로 현장을 누빈 박 대표지만 ‘컬렉터는 스승이다’란 지론으로 끊임없이 공부하고 또 공부한다고 말한다.

전문 교육기관 오픈, 미술인생 2막 시작

어느덧 맞이한 40대. 서울옥션 이사였던 그는 지난해 입사 이래 처음으로 장기휴가를 내고 50일간 세계여행을 떠났다. “나의 인생 2막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를 진지하게 고민하며 떠난 여행이었지요. 경매사란 직업도 매력적이지만 좀 더 영역을 넓혀보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거든요. ” 워싱턴부터 시작해 세계 곳곳의 박물관과 갤러리를 찬찬히 둘러보면서 그네들이 생활 속에서 미술과 어떻게 호흡하는 지. 또 최근의 예술 트렌드는 무언인지를 살펴봤다. “내가 뭘 잘하나 따져보니 새로운 걸 기획하고 사람을 만나 한데 모으는 걸 좋아하더라구요.” 이런 장점을 바탕으로 미술시장을 분석하고 지인들에게 자문을 구하며 사업을 구상하다 올 3월 미술전문 교육기관 <에이트 인스티튜트> (www.ait.or.kr) 문을 열었다. 박혜경 미술인생 2막을 시작한 것. 물론 독립경매사로서 서울옥션의 메이저 경매들은 계속해서 진행을 맡고 있다.

작품과 함께 미술시장의 흐름을 생생하게 교육한다

사실 그는 몇 년전부터 경매 진행 외에도 금융권 관계자나 컬렉터 등을 대상으로 미술품 수집과 경매방법, 투자지침 등에 대한 강의를 꾸준히 해온 인기 강사이다. 그동안 여러 대학에서 겸임교수 러브콜을 받기도 했었다. “서울옥션에서 진행되는 경매의 80% 가까이가 500만원 미만의 작품들이 주로 거래 되요. 미술시장은 몇몇 큰 손들이 좌지우지하지만 한편으로는 좋은 작품을 사서 곁에 두고 감상 하며 재테크도 하려는 일반 컬렉터 층도 두터워지고 있는 거지요.” 이 때문에 미술국내외 시장 동향부터 작품구입과 관리요령 등에 대한 전문적이고 실용적인 교육 수요가 늘고 있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다.

‘Maping your art world’ - 에이트 인스티튜트의 모토이다. 미술 컬렉터들이 지도처럼 믿을 수 있는 길잡이가 되기 위해 박 대표는 그동안 쌓아온 인맥을 총동원하고 삼고초려도 마다하지 않고 발로 뛰어서 국내 미술계 최강의 강사진으로 교육프로그램을 짜고 있다. 이론 교육 뿐 아니라 국내는 물론 상해, 베를린 등지의 아트 투어도 함께 병행하고 있다. 때문에 인터뷰 내내 그의 휴대폰은 쉴 새 없이 울려댔다.

앞으로 10년 뒤 에이트 인스티튜트를 우리나라 최고의 미술전문 교육기관으로 키워내는 것이 그녀의 꿈. “매너리즘에 빠지는 게 제일 두려워요. ‘미술품’을 내 인생의 화두로 삼은 만큼 경매사로서 안정된 길 대신 계속해서 스스로를 담금질하며 새로운 일을 시작해보려고 해요. 사실 10살 아들을 둔 워킹맘으로 여러 가지 힘들 때도 많지만 그래도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것이 즐겁습니다.” 상냥한 말투가 매력적인 박 대표는 늘 공부하는 자세가 자신을 지탱해주는 힘이라고 해맑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