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미술시장의 중요한 현장에는 늘 그가 있었고 신기록은 모조리 그의 손끝에서 나왔다. 대한민국 제1호 미술품 경매사 박혜경(44ㆍ사진)이 2006년 2월 진행한 경매에서 16억2,000만원에 팔린 ‘철화백자운룡문호’는 국내 미술품 경매사상 가장 높은 낙찰가를 기록했다. 이듬해 5월 경매에서는 박수근의 ‘빨래터’를 45억2,000만원에 팔았고 그 최고가 기록은 지금까지 깨지지 않고 있다. 지난 3월 신생 경매회사인 마이아트옥션의 첫 경매도 그가 맡았고 ‘백자청화운룡문호’는 18억원에 팔려 한국 고미술품 경매 최고가 기록을 다시 썼다. 미술품 유통시장의 ‘큰손’이던 그가 이번에는 국내 민간 최초의 미술전문
교육기관인 ㈜에이트(ait)
인스티튜트를 설립했다. ‘최초’를 열어 ‘최고’에 올려놓는 그를 서울 청담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미술의 미(美)도 몰랐다= 단국대 사학과 출신인 그는
광고대행사 AE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진로그룹 홍보실에서 일했다. 고여 있는 삶을 거부하는 것은 그의 타고난 기질이었던 모양이다. 창의성을 독려하는 기업을 강조하며 “
유니폼을 없애자”고 과감히 제안했고 “현장을 보지 않고는 광고하지 않는다”며 지방출장을 자처해 돌아다녔다. 열정적인 직원으로 사보에 소개된 인터뷰가 당시 가나아트갤러리 이호재 대표의 눈에 띄어 미술과의 인연이 시작됐다. “우리 미술시장에도 이런 감각의 마케터가 필요하다며 러브콜을 한 이 대표의 제안은 뜻밖이었다”는 그는 “하지만 건설ㆍ유통을 다루던 아이템이 미술품으로 바뀌는 것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더니 용기가 생기더라”고 회고했다.
이직 결심과 함께 그의
신혼여행지는 휴양지에서 프랑스
파리로 바뀌었다. 쉬는 대신
루브르박물관을 꼼꼼히 살폈고 거장들의 무거운 화집들을 짊어지고 돌아왔다. “1996년만 해도 미술시장이 폐쇄적이어서 전체 시장규모는 물론 누가 어떻게 얼마나 사고 파는지 정리되지 않았어요. 그만큼 산업화될 요소가 많았죠. 그 안에서 내 역할은 뭐가 있을까 생각하다 작가와 컬렉터, 애호가를 만나고 연결해 주는 인문학적 소통이 바로 내가 도전할 분야구나 싶었죠.”
◇홈쇼핑으로 피카소와 추사(秋史)를 팔다= 그가
아트디렉터로 변신한 그 시절은
케이블방송의 도약기이자 홈쇼핑 채널의 탄생기였다. “더 이상 앉아서 오는 손님만 기다릴 수는 없다고 생각해 안방으로 찾아가는 유통의 필요성을 절감했다”는 그는 “특히 지방 주요도시의 문화적 욕구가 높다는데 주목했다”고 한다.
전례 없는 ‘미술품 홈쇼핑 판매’는 세간의 관심을 끄는 데 성공했다. 박 대표는 97년부터 2년여간 LG홈쇼핑(현 GS홈쇼핑)에서 매주 ‘아트 컬렉션’을 진행하며 미술품 해설자로 나섰다. 피카소의 ‘화병’, 추사 김정희의 서첩, 서양화가 오지호의 ‘설경’ 같은 수작이 날개 돋힌 듯 팔려나갔다. “그림을 텔레비전으로 판다는 뚱딴지 같은 생각이 획기적이었던지 한 주에 18점씩 선보이는 작품들이 술술 판매됐어요. 김병종ㆍ오치균ㆍ이왈종ㆍ전수천 등 지금은 별이 된 당시 중견 작가들의
스튜디오 탐방까지 곁들여 재미있게 소개했죠. 대중과 호흡하며 미술을 알리는 일이 마냥 재밌었습니다. ”
◇경매로 그림을 사고팔다= IMF 외환위기가 닥치자 사람들이 ‘그림 사는 일’을 잊어버렸다. 거래는 끊겼고 인사동에서만 100여 개 화랑이 문을 닫았다. 홈쇼핑 방송도 내렸다. 미술시장을 살리기 위한 타개책이 필요했다. 유통시장 변혁을 결심한 이호재 회장이 경매회사 ‘서울옥션’을 설립하겠다며 경매사(auctioneer)를 제의했다. 단 한번도 미술품 경매를 본 적 없는 박 대표였지만 또다시 도전의식이 꿈틀거렸다. “98년 9월 서울옥션의 제 1회 경매를 좌충우돌 제 방식대로 치렀죠. 제대로 경매를 참관한 것은 이듬해 뉴욕에서 처음이었으니 무식해서 용감했다고나 할까요.“
도전정신과 사명감으로 덤빈 덕분에 박혜경은 국내 첫 경매사로
이름을 남겼다. 그전에 인사동 등지에서 고미술품 중심의 경매가 있었으나 비공개이거나 제한적 공개가 대부분이었다. 연중 최다 14번까지 경매를 하기도 했고 만삭의 몸으로 경매 단상에 오르기도 했다. 한 해 500억원어치를 판 적도 있다.
“미술품은 경매를 통해 본래 가치 위에 시의적 속성, 소장가의 힘, 얽힌 사연이 더해져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냅니다. 이야기와 역사로 부가가치를 만드는 것이 예술의 힘이죠. 경매사는 입찰자에게 가장 객관적인 정보를 주되 작품이 가진 가능성과 속성을 얘기해줘야 해요. 작품은 아는 사람만이 살 수 있고 애정을 품은 사람만이 최고가를 부를 수 있거든요.”
◇예술에도 교육ㆍ조언ㆍ자문이 필요하다= 서울옥션은 매년 20%씩
성장했고 더불어 그에게도 프라이빗 뱅킹(PB), 최고위과정,
MBA과정 등에서 강의 초청이 줄을 섰다. 그러던 2009년 여름 그는 돌연 2개월 휴가를 내고 미국 9개 도시로 여행을 떠났다. “미술관을 비롯해 지자체가 운영하는
전시기관과 어린이미술관, 사립미술관 등을 두루 방문하면서 ‘미술 콘텐츠의 힘’과 ‘선진국의 문화 인프라’를 확인했어요. 제프 쿤스를 키워낸 뉴욕의 30년 화상(畵商) 제프리 다이치가 미국 3대 미술관인 LA현대미술관(LA Moca)의 관장이 되는 시대에 경매가 아닌 또 다른 할 일이 있겠다는 소신이 생겼습니다. ”
외국의 경우 세계적인 경매회사인 소더비나 크리스티가 운영하는
전문 교육기관이 있지만 우리는 없다는 데 생각이 미친 그는 고심 끝에 독립을 선언했다. 2010년 5월 국내 최초의 민간 미술전문 교육기관인 에이트인스티튜트를 설립했다. “누구나 예술에 대한 욕망과 희구가 있다는 생각에 ‘예술 지도 그리기(Mapping your art world)’를 슬로건으로 내걸었죠. 다양한 융ㆍ복합이 이뤄지는 이 시대의 메가 트렌드는 문화와 예술인데 CEO나 오피니언리더들이 이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곤란합니다. 앞으로 기업 경영에서도 예술이 더 다양한 산업 분야에 접목돼 문화의 힘을 과시하는 사례가 늘어날 테니까요.”
소수가 향유하던 미술품을 더 많은 사람들이 즐기게 하려는 그의 바람은 처음이나 지금이나 한결 같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술을 알릴 전문가가 많아져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우리는 아직 미술품 구매자와 소장가에 대한 제도적 인프라나 사회적 존중이 미흡합니다. 미술품 거래에 양도세를 부과하기에 앞서 기업의 미술품 구입에 대한 세제혜택이 300만원까지밖에 안 되는 점부터 개선해야죠. 한쪽 창이 열리면 다른 창도 열어줘야 바람이 통하는 법이지요. ”
한국 미술계의 신선한 바람 한가운데에 앞으로도 늘 박혜경 대표가 서 있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