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경춘추] 미술품 컬렉션의 힘 |
기사입력 2011.05.15 18:47:24 | 최종수정 2011.05.15 18:49:21 |
|
남편과 건축기행으로 일본 후쿠오카 지역을 여행했을 때 나는 일정에는 없었지만 짬을 내 지역 미술관도 함께 둘러봤다.
처음 방문하는 대도시 여행의 경우 공항에서부터 갤러리 가이드나 미술전시 소식지를 찾는 게 일순위인데 운 좋게도 마침 화장품 회사로 유명한 폴라그룹 컬렉션 전시가 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었다. 인상파 그림을 많이 소장했던 폴라컬렉션은 세잔의 자화상을 비롯해 주옥 같은 18세기 이후 서양화가들의 작품들을 볼 수 있었는데 국내에 인상주의 작품 전시 나들이가 러시를 이루기 전이었으니 흥분과 설렘으로 전시를 둘러보고 나오는데 출구 앞에서 이 기업의 다른 소장품을 또 다른 현에서 전시하고 있는 포스터를 발견했다.
순간적으로, 순회전도 가능할 규모의 전시도 대단하지만 이 기업이 소장한 피카소 작품만 가지고 국내 다른 도시의 미술관에서 전시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컬렉션 규모가 대단하구나보다는 하코네의 산골 구석에 위치한 그 미술관에 가야만 볼 수 있는 게 아니라 과감하게 다른 지방 현의 공공미술관에 작품을 빌려주는 관대함 그리고 진정한 자부심에 감동을 받은 것이다(2006년 폴라 컬렉션은 일본 순회전시를 했다).
어찌 보면 현대 서양미술의 근본이자 당대 혁신이었던 인상주의 작품들을 후대의 자국민들이 여러 지방에서 볼 수 있게 한다는 것은 너무나 명분 있고 환영받을 일이 아닌가!.
일본에 비해 면적이 작은 우리는 단일생활권이긴 해도 문화예술 인프라가 수도권도 아닌 서울에 거의 집중되어 있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렇게 소프트웨어 교류로 다양화할 수 있는 방법도 꽤 있지 않을까 생각이 됐다. 무엇보다 굴지의 소장품을 자랑하는 기업미술관이나 국립미술관, 그리고 지자체에서 서로 컬렉션을 빌려주거나 교환전시를 가능하게 할 결심과 예산이 전제되어야 하겠지만 말이다.
2년 전 베니스 비엔날레 기행 중에 만난 철강재벌 핀축(Pinchuk)의 컬렉션 전시는 동유럽의 작은 나라인 우크라이나가 어떤 나라인지 처음으로 궁금하게 했다. 전 세계 미술인들의 가장 큰 축제장에 자국을 대표해 기업이 소장한 최고의 현대미술품작품을 가져와 국격을 보여준 것이다. 컬렉션이란 이런 보이지 않는 힘이 아닐까.
[박혜경 에이트 인스티튜트 대표ㆍ미술품경매사]